
여주인공이 인기남을 좋아하다가 결국 옆에서 도와주던 남자와 이어지는 흐름, 어디선가 본 것 같은 그 구조 말입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끝까지 보게 됐습니다. 단순히 가볍게 웃자고 본 영화였는데, 보고 나서 한동안 생각이 남더라고요.
클리셰를 비틀었지만, 클리셰에서 완전히 벗어나지는 못했다
이 영화는 하이틴 장르의 전형적인 내러티브 구조(narrative structure), 즉 이야기가 전개되는 틀을 의도적으로 뒤집으려는 시도가 곳곳에 보입니다. 여기서 내러티브 구조란 영화나 소설에서 사건이 배열되고 갈등이 해소되는 방식을 의미합니다. 보통 하이틴 영화에서 금발 미녀 캐릭터는 주인공을 괴롭히는 악역이 정해진 공식인데, 이 영화는 그 자리를 진짜 친구로 채웁니다. 그것만으로도 클리셰 비틀기로서의 가치는 충분히 있다고 봅니다.
영화의 핵심 설정은 '더프(DUFF)'라는 개념입니다. DUFF란 Designated Ugly Fat Friend의 약자로, 쉽게 말해 예쁜 친구들 사이에서 상대적으로 주목받지 못하는 들러리 같은 존재를 뜻합니다. 주인공 비앙카는 이 단어를 처음 들은 순간부터 흔들리기 시작합니다. 흥미로운 지점은, 그녀가 원래부터 불행했던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제가 보면서 가장 공감한 부분도 바로 이 지점이었습니다. 타인이 붙인 이름표 하나가 멀쩡하던 자아 인식을 무너뜨리는 과정, 그게 생각보다 현실적으로 그려졌습니다.
그런데 솔직히 말하면 이해가 안 가는 부분도 있었습니다. 영화 속 비앙카는 객관적으로 봐도 외모도 나쁘지 않고, 친한 친구들도 있고, 남사친도 있습니다. 실제 청소년들이 느끼는 소외감의 깊이와는 조금 거리가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습니다. 또 갈등이 생길 때마다 영상을 인터넷에 올려 상대를 망신주는 장면이 반복되는데, 이건 하이틴 영화에서 너무 자주 쓰이는 서사 장치(narrative device)라 오히려 몰입이 깨졌습니다. 여기서 서사 장치란 이야기를 전개시키거나 갈등을 만드는 데 반복적으로 사용되는 극적 도구를 말합니다.
이 영화가 궁극적으로 말하고 싶었던 메시지, 즉 외적인 변신이 아닌 내면의 수용으로 끝나는 결말은 분명히 의미 있습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남주는 여전히 학교에서 제일 잘나가는 킹카 포지션입니다. "퀸카가 아니어도 좋다"고 말하면서도 남주는 킹카여야 한다는 구조, 저는 그 부분이 조금 걸렸습니다.
자존감과 비교심리, 이 영화가 10년이 지나도 유효한 이유
이 영화가 2015년 작품임을 감안하면, 지금 다시 봐도 낡지 않았다는 점이 인상적입니다. 그 이유를 생각해보면, 비교의 무대만 달라졌을 뿐 본질이 그대로이기 때문입니다. 10년 전에는 교실 안에서 서열이 매겨졌다면, 지금은 SNS라는 훨씬 넓고 가혹한 공간에서 비교가 이루어집니다.
실제로 청소년 자존감과 SNS 이용의 상관관계는 여러 연구에서 지속적으로 다뤄지고 있습니다. 소셜 비교 이론(Social Comparison Theory)에 따르면, 사람은 자신을 평가할 때 타인을 기준점으로 삼으려는 본능적 경향이 있습니다. 여기서 소셜 비교 이론이란 사람이 자신의 의견과 능력을 파악하기 위해 다른 사람과 자신을 비교하는 심리적 과정을 설명하는 이론으로, 심리학자 레온 페스팅거(Leon Festinger)가 1954년에 제안했습니다. 미국심리학회(APA)는 SNS 사용이 청소년의 자존감과 신체 이미지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경고한 바 있습니다(출처: American Psychological Association).
제 경험상 이 영화에서 가장 현실적으로 느껴진 장면은 화려한 변신 씬이 아니었습니다. 비앙카가 더프라는 말을 들은 후, 친구들과 함께 있는 평범한 순간을 갑자기 다르게 바라보기 시작하는 장면이었습니다. 아무것도 달라진 게 없는데, 인식만 바뀌어서 행복했던 기억이 불행의 증거처럼 보이기 시작하는 것, 저도 어느 순간 비슷한 경험을 한 적 있어서 그 부분에서 멈칫했습니다.
영화 속에서 가장 뇌리에 남는 메시지는, 누구나 누군가의 더프일 수 있다는 말입니다. 완벽해 보이는 퀸카조차 다른 맥락에서는 들러리가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건 단순한 위로의 말이 아니라, 서열이나 비교라는 기준 자체가 얼마나 상대적이고 불안정한 것인지를 꼬집는 말로 들렸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10대만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직장에서도 끊임없이 누군가와 비교당하고 스스로를 갉아먹는 사람들은 어느 조직에나 있습니다.
이 영화의 메시지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타인이 붙인 이름표가 아닌, 내가 나를 어떻게 정의하는지가 더 중요하다
- 완벽해 보이는 사람도 다른 맥락에서는 들러리가 될 수 있다
- 외적 변신이 아닌 자기 수용이 진짜 성장의 방향이다
여성 청소년의 신체 이미지와 자존감에 관한 연구에 따르면, 또래 집단 내의 비교 경험이 자기 효능감(self-efficacy)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여기서 자기 효능감이란 어떤 상황에서 자신이 필요한 행동을 성공적으로 해낼 수 있다는 믿음을 뜻합니다(출처: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
남주의 태도에 대해서도 한마디 하고 싶습니다. 여주에게 상처가 되는 말을 먼저 꺼내고, 전여친과도 얽히고, 비앙카가 달라 보이기 시작한 뒤에야 감정이 깊어지는 것처럼 느껴지는 흐름은 아쉬웠습니다. 하이틴 영화에서 남주가 한 번 실수하고 나중에 깨닫는 전개는 장르적 클리셰이지만, 현실에서 그런 관계 패턴이 건강한 로맨스라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그 부분은 영화의 진보적인 메시지와 조금 어울리지 않는 지점으로 남았습니다.
결국 이 영화가 완벽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들러리라는 단어 하나가 사람의 자기 인식을 어떻게 흔드는지, 그리고 그 이름표를 스스로 거부하는 것이 얼마나 어렵고 또 중요한지를 가볍지 않게 다룬 점은 분명히 값어치가 있습니다. 하이틴 장르 특유의 공식을 즐기면서도, 지금 비교나 자존감 문제로 지쳐 있다면 한번 꺼내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뻔한 결말 뒤에 생각보다 오래 남는 질문 하나쯤은 건질 수 있는 영화입니다.
참고: https://www.cinephile.kr/news/articleView.html?idxno=78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