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공포 드라마 틀었다가 중간에 끄고 잔 경험, 한 번쯤은 있지 않으신가요? 저도 그런 전적이 꽤 됩니다. 그래서 기리고도 처음엔 가볍게 한 편만 볼 생각으로 틀었는데, 어느 순간 새벽 두 시가 넘어 있었습니다. 넷플릭스 글로벌 비영어 쇼 1위에 오른 작품이 괜히 그 자리에 오른 게 아니더군요.
캐스팅이 이 드라마의 절반이었습니다
솔직히 처음에는 낯선 얼굴들이 많아서 조금 걱정했습니다. 유명 배우 없이 괜찮을까 싶었거든요. 그런데 제가 직접 보고 나서 생각이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오히려 모르는 얼굴이었기 때문에 캐릭터 자체에 집중할 수 있었고, 그게 몰입도를 훨씬 높여줬습니다.
드라마 캐스팅 전략에서 자주 언급되는 개념 중 하나가 앙상블 캐스팅(Ensemble Casting)입니다. 앙상블 캐스팅이란 주연 한두 명에게 집중하지 않고 조연까지 고른 연기력을 가진 배우들로 구성하는 방식으로, 작품 전체의 완성도를 높이는 데 유리합니다. 기리고가 딱 그 방식을 택했고, 결과적으로 잘 맞아떨어진 케이스라고 봅니다.
노재원, 전소니 같은 배우들이 극의 중심을 잡아주면서 신인 배우들이 마음 놓고 캐릭터를 소화할 수 있는 구조가 만들어진 것 같았습니다. 특히 햇살과 방울 캐릭터는 댓글마다 스핀오프 이야기가 나올 만큼 독자적인 매력이 있었고, 저도 이 두 캐릭터를 더 보고 싶다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들었습니다.
기리고의 캐스팅이 잘 된 이유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신인 위주 캐스팅으로 캐릭터 신선도 확보
- 노재원·전소니 등 중견 배우로 서사 안정감 보완
- 앙상블 구조로 주조연 간 연기 밀도 균형 유지
연기력이 공포보다 오래 남았습니다
이 드라마에서 제가 가장 예상 밖이었던 건 연기력이었습니다. 공포 드라마에서 보통 무서운 장면은 기억에 남아도 배우가 기억에 남는 경우는 드문데, 기리고는 달랐습니다.
저주를 걸 때마다 눈빛이 바뀌는 도해 캐릭터, 귀신 들린 듯 웃는 세아의 장면은 분명히 무서웠습니다. 그런데 그보다 더 오래 머릿속에 남은 건 배우들의 표정과 감정선이었습니다. 업순이 역할을 맡은 배우의 기괴한 웃음이나, 시원의 폰 비밀번호 장면처럼 소름 돋는 순간들은 단순한 공포 연출을 넘어선 연기의 힘이 있었습니다.
드라마 연출 측면에서 보면, 기리고는 공포 장르에서 흔히 쓰이는 점프 스케어(Jump Scare) 기법에만 의존하지 않았습니다. 점프 스케어란 갑작스러운 소리나 이미지로 관객을 놀라게 하는 방식으로, 단기적인 공포감을 주지만 여운이 짧다는 단점이 있습니다. 기리고는 여기에 심리적 긴장감을 쌓아 올리는 빌드업(Build-up) 방식을 함께 활용했고, 그래서 회차가 지날수록 공포의 밀도가 높아지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오컬트·공포 장르 드라마의 글로벌 수요는 최근 3년간 꾸준히 증가하고 있으며, 특히 문화적 고유성을 갖춘 작품의 해외 반응이 높다고 합니다(출처: 한국콘텐츠진흥원). 기리고가 한국 무속 신앙을 올드하지 않게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방향은 이런 흐름과도 맞닿아 있습니다.
시즌2에서 풀릴 떡밥, 어디까지 알고 계신가요
기리고를 끝까지 본 분들이라면 쿠키 영상을 보고 한 번쯤 멈칫하셨을 겁니다. 저도 그 장면에서 바로 다시 돌려봤습니다.
마지막 쿠키 영상에는 민수가 학교 개구멍에서 폰을 발견하고 충전 후 켜는 장면이 나옵니다. 여기서 입력된 여섯 자리 비밀번호가 나리의 생년월일이 아니라 권시원의 생일이라는 점이 핵심입니다. 나리가 소원을 빈 이후 건시원과 비슷한 행동을 보이고, 붉은 실이 몸에 들어간 후 완전히 장악되었다는 점을 생각하면 시즌2에서 다룰 서사가 이미 짜여 있다는 느낌이 강하게 듭니다.
박윤서 감독은 인터뷰에서 "햇살과 방울이 처음 만나게 된 과정, 나리의 행방, 보여주고 싶었지만 여력이 부족했던 이야기들이 있다"고 밝혔고, 배우들도 시즌2에 긍정적인 입장을 공개적으로 표명한 상태입니다. 나리 역 강미나 배우도 "나리의 육체가 어디 있는지 모른다. 감독님이 시즌2를 염두에 두고 시작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언급했습니다.
또한 1편 마지막에서 방울이 선글라스를 착용하고 다친 눈의 반점이 커지며 사륜안(四輪眼)으로 각성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사륜안이란 영계를 꿰뚫어 볼 수 있는 초월적 시각 능력을 의미하는 설정으로, 시즌2에서 방울이 이 능력으로 햇살을 묶어둔 영을 찾아내는 서사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습니다. 제 경험상 이런 각성 장면을 쿠키에 넣는 경우, 제작진이 이미 다음 시즌 그림을 그려두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업순이 섬기는 신의 정체도 빠질 수 없는 떡밥입니다. 정상적인 수호신이라면 신당을 엎었다고 사람을 죽이진 않죠. 덜미나 살을 날리는 방식도 일반적인 무속 설정과는 다릅니다. 업순이 악신(惡神)을 섬기는 무당이라는 추측은 꽤 설득력이 있고, 시즌2의 메인 빌런 구도로 이어질 가능성도 충분합니다. 넷플릭스 공식 채널에서도 기리고 관련 후속 콘텐츠에 대한 반응을 지속적으로 모니터링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출처: Netflix Korea 공식).
오랜만에 처음부터 끝까지 손에 땀을 쥐고 본 한국 공포 드라마였습니다. 시즌1의 이야기를 억지로 늘리기보다는 햇살과 방울의 퇴마 서사를 중심으로, 새로운 학기와 새로운 사건이 펼쳐지는 방식으로 확장된다면 장기 시리즈로도 충분히 가능성이 있다고 봅니다. 시즌2 확정 소식이 나오는 날, 저는 아마 또 새벽까지 정주행하고 있을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