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넷플릭스 공개작이라는 타이틀이 기대치를 낮춘 탓이었습니다. 그런데 "극장 개봉했어야 할 영화"라는 댓글들을 보고 틀어봤다가, 결말 크레딧이 올라갈 때까지 자리를 뜨지 못했습니다. 변성현 감독의 영화 굿뉴스, 웃기지만 마냥 웃을 수만은 없는 작품이었습니다.
블랙코미디가 정말 그 역할을 하는가
일반적으로 블랙코미디라고 하면 어둡고 불편한 소재를 웃음으로 희석시킨 장르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데 제 경험상 이 정의는 절반만 맞습니다. 굿뉴스는 웃음으로 희석하는 것이 아니라, 웃음을 일으킨 직후 그 자리에 씁쓸한 감각을 심어두는 방식을 씁니다.
블랙코미디(Black Comedy)란 죽음, 권력 남용, 사회적 부조리처럼 무겁고 불편한 주제를 유머로 포장하여 비판적 시각을 전달하는 장르입니다. 단순히 어두운 유머가 아니라, 웃음 뒤에 반드시 비판 의식이 따라와야 합니다. 제가 직접 영화를 보면서 느낀 것은, 납치범들이 다수결로 의사 결정을 하는 장면이나 공항을 평양으로 속이는 황당한 작전에서 웃음이 터지는 순간에도 "이게 실제로 있었던 일의 변용이구나"라는 생각이 떠나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그 불편함이 웃음과 동시에 존재한다는 것, 그것이 이 영화가 장르를 제대로 구현했다는 증거라고 생각합니다.
영화는 1970년 일본에서 실제로 발생한 요도호 사건을 모티브로 합니다. 요도호 사건이란 일본 공산주의 무장 단체인 적군파가 일본항공 351편을 공중 납치한 실제 사건으로, 납치된 여객기가 북한 평양으로 향했습니다. 굿뉴스는 이 실화를 가져와 한국 정부가 김포공항을 평양으로 위장해 여객기를 강제 착륙시키려는 허구적 작전을 덧붙입니다. 실화와 픽션의 경계를 의도적으로 흐리는 이 구조 자체가,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확증 편향의 주제와 맞닿아 있습니다.
굿뉴스에서 제가 특히 인상 깊었던 것은 다음과 같습니다.
- 웃음이 발생한 직후 바로 씁쓸한 여운이 따라오는 극적 리듬
- 현실의 실화를 기반으로 했기에 풍자가 단순한 과장으로 소비되지 않는 구조
- "대중은 진실이 아니라 믿고 싶은 것을 믿는다"는 주제가 특정 장면이 아닌 영화 전체에 걸쳐 누적되는 방식
확증 편향을 체스판 위에 올린 인물 설계
확증 편향(Confirmation Bias)이란 자신이 이미 믿고 싶은 방향으로 정보를 해석하고 선택적으로 수용하는 심리적 경향을 말합니다. 영화 굿뉴스는 이 개념을 세 인물에게 각각 다르게 분배하면서 이야기를 구성합니다. 제가 영화를 보면서 놀란 것은, 세 캐릭터가 서로 다른 방식으로 이 편향을 구현하고 있다는 점이었습니다.
설경구 배우가 연기한 아무개는 이름조차 없습니다. 제가 처음 이 설정을 봤을 때는 단순한 연출적 장치라고 생각했는데, 영화를 다 보고 나서야 이름 없는 인물이 얼마나 섬뜩한 존재인지 체감했습니다. 그는 "일어난 사실, 약간의 창의력, 믿으려는 의지. 이 세 가지가 잘 합쳐지면 진실이 된다"는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내뱉습니다. 설경구 배우는 이 인물을 시종일관 건조하고 냉소적인 톤으로 유지하는데, 그 절제가 오히려 캐릭터의 위험성을 더 선명하게 드러냈습니다. 장르적 연기 스펙트럼이 넓은 배우라는 사실을 이번 영화에서 다시 한번 확인했습니다.
홍경 배우의 서고명은 제가 이 영화에서 가장 공감한 인물입니다. 우연히 작전에 끌려 들어간 그는 이용당하고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출세욕이 피어오르는 것을 억누르지 못합니다. 어쩌면 현대인 누구나 비슷한 상황에서 그와 똑같이 행동했을지 모릅니다. 홍경 배우는 이 내면을 주로 표정과 목소리 톤에 담아냈는데, 그 표현이 과하지도 부족하지도 않았습니다. 류승범 배우의 박상현은 다릅니다. 그는 굿뉴스와 배드뉴스 중 어느 쪽이든 자신에게 유리한 결과만 취하면 그만이라는 철저한 정치적 인물입니다. 리드미컬한 말투와 B급 감성이 섞인 연기로 화면에 등장할 때마다 긴장감과 웃음을 동시에 만들어냈습니다.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류승범 배우가 이 캐릭터에 이렇게 잘 맞을 줄은 몰랐습니다.
한국영화진흥위원회의 2024년 한국 영화 산업 결산 보고서에 따르면, OTT 플랫폼 공개작 중 블랙코미디 장르의 시청 완주율이 일반 코미디 대비 높게 나타났습니다(출처: 한국영화진흥위원회). 이 수치는 관객이 단순한 오락을 넘어 주제 의식이 있는 작품에 더 오래 집중한다는 점을 방증합니다.
미장센이 영화의 무게를 결정한다
미장센(Mise-en-scène)이란 카메라 앵글, 조명, 배우의 배치, 소품 등 화면 안에 담기는 모든 시각적 요소를 의도적으로 배치하는 연출 개념입니다. 쉽게 말해 감독이 화면 안에서 무엇을 어떻게 보여줄지 설계하는 일입니다. 변성현 감독의 굿뉴스는 이 미장센이 단순히 보기 좋은 화면을 위한 것이 아니라, 영화의 톤과 주제를 결정하는 핵심 도구로 기능합니다. 제 경험상 한국 영화에서 미장센이 이 수준으로 주제 의식과 연동된 경우는 꽤 드뭅니다.
영상은 전체적으로 정적입니다. 카메라가 크게 움직이지 않고, 인공적인 공간감과 고전적인 조명, 명암 대비가 두드러집니다. 그런데 연출은 역동적입니다. 이 두 가지가 공존하는 느낌, 즉 화면은 멈춰 있는데 이야기는 달리고 있다는 감각이 영화 전체를 관통합니다. 제가 처음 이 감각을 의식한 것은 공항 위장 작전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시퀀스였는데, 카메라는 묘하게 거리를 두고 있었고 그 거리감이 오히려 긴장감을 높였습니다.
서스펜스(Suspense)란 관객이 결과를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 느끼는 심리적 긴장감으로, 스릴러나 범죄물의 핵심 정서입니다. 굿뉴스는 블랙코미디이면서도 이 서스펜스의 완급 조절에 성공합니다. 코미디 장면 직후 긴장이 다시 쌓이고, 그 긴장이 풀리는 방식이 또 웃음으로 이어지는 구조가 반복됩니다. 일반적으로 코미디와 서스펜스는 하나가 강해지면 다른 하나가 약해진다고 알려져 있지만, 이 영화는 그 공식에서 벗어나 있었습니다.
부산국제영화제(BIFF) 공식 섹션 중 갈라 프레젠테이션(Gala Presentation)은 완성도 높은 작품을 대형 상영관에서 공개하는 부문으로, 해당 섹션 선정 자체가 작품에 대한 일정 수준의 공인입니다. 굿뉴스가 제30회 부산국제영화제 갈라 프레젠테이션에서 처음 공개되었다는 사실은, 이 영화가 단순한 OTT 소비용 콘텐츠로 기획된 것이 아님을 보여줍니다(출처: 부산국제영화제).
결국 이 영화가 아쉬운 이유도 같은 지점에 있습니다. 제가 보는 내내 "극장 화면에서 이 미장센을 봤다면 어땠을까"라는 생각이 계속 들었습니다. 완성도 높은 작품이 OTT로 공개되고, 오히려 덜 완성된 작품이 극장을 채우는 지금의 현실이 솔직히 씁쓸했습니다.
굿뉴스는 한 번 보고 잊히는 영화가 아닙니다. 웃음의 여운이 가시고 나면 "내가 믿는 것이 정말 진실인가"라는 질문이 남습니다. 오랜만에 영화 한 편이 이렇게 오래 머릿속에 남는 경험이었습니다. 블랙코미디 장르에 익숙하지 않은 분이라면 다소 낯설 수 있지만, 그 낯섦 자체가 이 영화가 의도한 불편함일 수 있습니다. 넷플릭스에 공개되어 있으니, 조용한 밤에 한 번 틀어보시길 권합니다.
참고: https://www.cinephile.kr/news/articleView.html?idxno=788